기억한다는 것보다 세세히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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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 않았으므로 그 어떤 사건도 사소하지 않았고, 사소하고 세세한 일들을 우리는 인간의 일로 부각시킬 수 있었으리라. 이 세세함은 항상 옳다. 그러니 세세히 기억한다는 것은 기억한다는 것보다 더 옳다.
이하 김소연(시인)의 글에서 인용
출처 : http://ch.yes24.com/Article/View/25804
은희경식 기억법, 현재의 길목에서의 기억을 불현듯 마주치는 일
기억은 골똘하게 집중할 때에만 가까스로 완성된다. 완성된 기억은 향후 반복해서 상기하는 것으로써 어쩔 수 없이 변형된다. 변형된 기억은 종내는 완고해진다. 섬세함은 유실되고 이데올로기가 덧입혀지기 십상이다. 은희경은 기억하고 있던 것을 되새김질하듯 소설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 쓰여지는 방향에 두터운 진실들을 채워나가기 위하여 기억을 비로소 소환한다. 기억술이 뛰어나서라든가 소중히 기억해오던 것을 마침내 기록하기 위하여 집필을 시작한 걸로 짐작되진 않는 것이다. 캐릭터에게 이름이 주어지는 순간에, 캐릭터의 시선을 따라가는 순간에, 캐릭터의 처지를 풍경처럼 바라보는 그 순간에, 마치 빵조각에 모여드는 개미들처럼 기억들이 깨알같이 일렬로 다가와 달라붙는 식이다.
은희경식 기억법은, 기억을 기억의 상자 속에서 꺼내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길목에서의 기억을 불현듯 마주치는 일과 같아진다. 그러니 나쁜 기억마저 반갑고 새롭다. 그러니 은희경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기억력이 지닌 완고함이나 변형이 전혀 없을 수밖에 없다. 작가에 의해 재단된 어떤 삶이 있는 게 아니라, 단지 그냥의 삶이 있다.
문학에 있어서 신선함은 가장 중요한 덕목 중 단연코 가장 중요한 덕목인데, 은희경의 이야기는 그렇게 하여 우리에게 번번이 가장 신선한 하나의 사건이어왔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안에 들어 있는 단편들은 각각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다른 시간을 만나 다시 삶과 마주치는 같은 이야기들이다. 연작이라고 말해도 좋고, 번번이 다시 쓰여지는 이야기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한 사람이 한 평생 결코 같은 사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소설 속에서 입증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시간을 포함한) 다른 조건에 놓이게 되는 한 인간은 전혀 다른 작품의 전혀 다른 인물이 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 다른 사람들을 겹쳐놓아야 한 사람이 비로소 완성된다.
대단한 이야기거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정확하다는 의미에서 보편적이고 또한 정확하다는 의미에서 유일한, 한 사람이 비로소 이 소설집 속에서 삶을 완성해나간다. (미완성이 아니라) 비완성으로써. '단 하나의 눈송이'를 발굴해내는 사이토 마리코의 시에서처럼, 순일하게 시선을 집중하는 것으로써 단 하나의 이야기가 생겨난다. 마침내 시간이 낯설게 소환될 때에 우리가 우리 삶에 미묘한 애착을 장착할 수 있다는 것을 조용조용 알려 준다. 다른 장소를 꿈꾸지만 결국은 다른 시간을 꿈꾸는 일이 여행인 것처럼, 우리의 인생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여기에 있는 셈이 된다. 장소를 마치 여행을 떠난 자가 다시 여행을 떠나는 일과 같이.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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